‘나인 브릿지’는 어떻게 세계100대 골프 코스에 들어갔나 ?

30여 년 전 농구팀 창설과 관련해서 삼성과 현대의 자존심이 걸린 스카웃 싸움터에서 제임스 본드처럼 활약했던 주인공, 현재 나인 브릿지 대표로 있는 김용운 씨다.

그는 1966년 배구 선수로 제일제당에 입사했고,  1978년부터 1980년 까지 삼성 남녀 농구팀 주무를 했다.

삼성이 프로야구를 창단하면서 1982년부터 1989년까지는 야구팀에서 관리부장을 맡았다. 나인 브릿지 골프장에서 일한 것은 2000년 부터다

그는 점점 작은 공을 찾아가고 있다.

골프장 대표를 맡게 된 건 저돌적이면서도 꼼꼼한 일 처리 덕분이다.  1987년에는 제일제당 총부부장을 하면서 노사관계를 담당했다.  사회곳곳에서 시위 열풍이 불었지만 제일제당엔  큰 잡음이 없었다.  물론 그의 역할이 컸다.

1994년 제일제당 영업부장을 맡은 지 1년 만에 이사가 됐다.  보수적이던 제일제당에서 이런 초고속 승진은 전례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대졸이 아니고 고졸 사원이었다.

그는 이사로 재직한 5년 동안 쇼핑몰을 만들고 햇반을 기내식 비빔밥 메류로 넣는 등의 업무성과로 네 차례 영업대상을 받았다.

2000년 CJ 푸드시스템 대표이사가 되었는데  나인브릿지 골프장을 개장하면서 다시 차출되었다.

김대표는 당시 “내가 스포츠 경력은 물론 골프장에서 필요한 조경과 노사관리를 해본 경험이 있고, 영업  및 마케팅까지 해봤기 때문에 적임자로 본 것 같다.” 라고 말했다.

나인브릿지의 모회사인 CJ 그룹은 그에게 원대한 목표를 제시했다.  최고의 클럽을 만들어 국내 최초로 세계 100대 코스에 진입시키라는 것이었다.

나인 브릿지는 그래서 국내에선 처음으로 페어웨이에  ‘벤트그라스'(잔디의 한종류,한지에서 잘자람)를 심었다. 콘도를 지은 것도 최초였다.

그러나 코스와 시설이 좋다고 세계 100대 코스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해외 전문가들의 눈길이 닿기 어려운 제주에 있는 코스는  핸디캡이 월씬 더 많았다.

김대표는  “100대 코스 선정위원들이 골프장을 봐야 하는데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돈을 많이 투자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항공권과 체재비를 주고 선정위원들을 초청할 수도 없는 노릇 이었다.  권위 있는레스토랑 가이드북인 <미슐랭 가이드>의 평가위원이 공짜 음식을 먹으면 안 되듯 100대 코스 선정위원도 골프장에서  접대를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나인브릿지가 100대 코스에 들어가는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김 대표는 외국인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월드클럽챔피언십(WCC)을 만들었다.

WCC 는 세계 유명 클럽 회원들이 골프 실력을 겨루는 아마추어 대회다. 클럽에 소속된 선정위원들이 대회 참가차 제주로 와서 나인브릿지 코스를 둘러볼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LPGA 투어 ‘나인브릿지 클래식’도 만들었다.  나인 브릿지의 아름다운 전경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방송에 노출되었다.

CJ 이재현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로 전세계 유명 코스를 꼼꼼히 관찰하고 각 코스와 문화를 살폈다.

그 덕에 나인 브릿지는 100년이 넘는 코스들이 가진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국내의 다른 코스들과 나인브릿지의 가장 큰 차이라고 말한다.

클럽 나인 브릿지는 2005년 <골프 매거진> 선정 세계 100대 코스에 95위로 이름을 올렸다. <골프 매거진>은 격년으로 명문 코스를 선정하는데 2007년엔 60위 2009년에는 55위로 순위가 뛰어 올랐다.

더구나 많은 명문 코스를 섭렵한 김 대표 자신이 선정위원이 되었기 때문에 세계 100대 코스에 빛나는 나인브릿지의 위상은 더욱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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