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민족영웅 손기정
1945년 광복후 손기정 선생(1912 ~ 2002)은 묵묵히 마라톤 후진 양성에만 매달렸다.
정치쪽에서 유혹이 많았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전국의 꿈나무 20 여명을 뽑아 서울 안암동 자신의 집에서 밥을 먹여 가며 훈련을 시켰다.
훈련은 매일 새벽 장독대의 태극기 아래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 되었다. 수시로 김구 선생, 이범석 장군 등을 모셔다가 민족정신을 북돋는 강연을 듣기도 했다.
제자 서윤복(1923 ~ )은 손 선생님이 우리 합숙 비용을 마련하기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손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에 너도나도 서로 들어 가려고 했다. 고 말했다.
1947년 서윤복이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5분 39초의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했다. 손 선생이 1935년 11월 도쿄에서 세운 세계최고기록(2시간 26분 42초)을 제자 서윤복이 경신한 것이다.
이 기록은 1952년 6월 영국의 제임스 피터스에 의해 깨졌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인 스승과 제자가 17년 동안 세계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셈이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는 역시 손 선생이 길러낸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2,3 위를 휩쓸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최윤칠이 4위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이창훈이 4위를 기록했다. 모두 손선생의 작품 이었다.
손 선생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하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수없이 반복 하였다.
다리에 모래 주머니를 매달고 달리는가 하면, 베를린 올림픽 선수촌에서 새벽에 남몰래 일어나 별도 훈련을 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신발 바닥을 깍아내기도 하고, 가위로 러닝셔츠를 도려내고, 팬티를 잘라 내기도 하였다.
손 선생은 달기고 또 달렸다. 학교에 오갈 때뿐만 아니라 압록강 변의 뚝, 모랫벌등 아무 곳이건 가리지 않고 달렸다. 그의 단벌 옷은 늘 땀으로 절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손기정 선생은 “내가 달리기를 하게 된 것은 돈이 한 푼도 안 들기 때문이야 만약 스케이트를 살 수만 있었다면 스케이팅 선수가 됐을거야”라고 말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스케이트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안드는 달리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전에 손 선생은 ” 난 배만 부르면 반드시 1등을 했어. 그 당시 밥만 충분히 먹고 달렸다면 기록이 더 좋았을 거야. 그런데 요즘 후배들은 거꾸로야 조금만 배가 부르면 달리지 않으려고 한단 말이야 1등 해본 사람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1등을 할 수 있는데….”라며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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