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자세 : 하석주의 백태클
하석주 하면 생각나는 것은? 그는 왼발의 달인으로 불리면서 축구 대표팀을 오래동안 이끌어온 스타 선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석주 하면 98년 프랑스 월드컵축구대회를 떠올린다. 당시 대회에서 백태클로 인해 퇴장 1회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석주는 왜 퇴장당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물론 축구 변방국에 대한 차별이니 뭐니 하는 그런 유치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반인들이 취직하게 되면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과도 같다. 열심히 일해 회사가 잘 되면 자기의 월급도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회사에 취직한 사람들은 회사일 모두를 혼자하지 않는다. 동료들과 일을 나누어 한다. 동료들과 일을 나누어하는 것을 전문용어로 분업이라고 한다.
분업은 애덤 스미스(Smith, A.)가 주창한 이래 경제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취급되어 왔다.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18개의 공정으로 나누어 10명이 일하는 바늘공장의 하루 생산량은 4만 8,000개인 반면 개인이 18개의 공정에서 모든 작업을 다할 경우 개인의 생산량은 20개에 그쳐 10명의 하루 생산량은 200개에 불과하다”고 언급하며 분업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즉 분업은 개개의 작업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분할을 뜻한다.
스포츠 산업에서도 경기라는 상품은 철저하게 분업을 바탕으로 생산된다. 예를 들어 이승엽이 제 아무리 홈런을 많이 친다고 해도 공을 던지는 투수가 없으면 홈런을 칠 수 없다. 박지성이 축구장에서 펄펄 난다고 해도 골문까지 지킬 수는 없다. 야구라는 상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팀당 9명의 두 팀이 필요하다. 축구라는 상품이 생산되는 데에는 모두 22명의 선수가 필요하다. 즉 이승엽은 18분의 1, 박지성은 22분의 1의 역할 밖에 할 수 없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바늘 생산에서는 한 명만이 작업하더라도 바늘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스포츠 산업에서는 혼자서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포츠 산업에서의 분업은 일반 산업에서의 분업보다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스포츠 산업 현장에서 각 팀 선수들이 뒤엉켜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을 가끔 목격할 수 있다.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행태는 직업의식이 희박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기장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자동차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옆자리 동료(동업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동업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경기라는 상품이 제대로 생산될 리 없다. 그래도 애덤 스미스가 예로 든 바늘 공장에서는 사고로 인해 분업체계가 무너지더라도 최소한(20개)의 제품 생산이 가능하지만 스포츠 산업에서는 동료 또는 동업자에 대한 가해 행위로 분업체계가 붕괴되면 단 한 개의 상품도 생산되지 않는다. 경기 도중 집단 난투극 혹은 심한 반칙행위를 한 선수가 퇴장당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기업(스포츠계에서는 구단)이 분업을 도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시간에 물건을 많이 만들어 돈을 보다 많이 벌기 위해서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이윤 극대화라고 한다. 그런데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건을 같은 시간에 많이 만드는 분업 이외에 또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부가가치 극대화라는 것이다.
이제 부가가치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설명해보자. 부가가치란 말 그대로 가치를 부가(보태는 것)하는 것이다. 계산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생산된 물건의 가치에서 비용을 빼면 된다. 비용은 물건 생산을 위해 구입한 원재료 비용과 자기 공장 생산설비의 감각상각비로 구성된다.
감가상각비에 대해 잠시만 설명해보도록 하자. 우리가 새자동차를 사서 타고 다니다 보면 그 가치가 하락하듯이 공장설비도해가 지날수록 가치가 하락한다. 새 공장 설비를 계속해서 사용하다 보면 기계가 닳아 점차 헌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 닳아 없어지는 가치가 바로 감가상각비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축구공을 만드는 회사가 피혁회사로부터 1,000원에 가죽을 산 다음 공을 만들어 선수들에게 1,500원을 받고 팔았다고 가정하자. 이때 1,500원에서 1,000원은 다른 기업으로부터 구입한 원재료 비용이며나머지 500원에는 감가상각비와 부가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즉 500원에는 감가상각비 외에 종업원의 임금, 이자 그리고 순이익 등 부가가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생산활동에서 부가가치를 높이게 되면 종업원의 임금도 높아지고 순이익도 이에 따라 커지게 된다. 또한 공장을 건설하거나 설비를 살 때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렸다면 이에 대한 이자도 쉽게 갚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부가가치를 높이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으로서 부가가치 극대화는 바로 이윤 극대화와 직결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부가가치의 크기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체로 제조업에서 농업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 동일한 제조업이라 하더라도 제품의 생산 및 가공과정에 따라 부가가치는 같지 않다. 예를 들면 신발이나 가방의 생산에서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보다는 컴퓨터 및 자동차 생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가 크게 나타난다. 같은 제품에서도 부가가치의 차이는 있다. 연필 지우개를 붙인다거나, 등산용 배낭을 만들 때 이용자가물통을 배낭 속에 넣었다 뺐다 하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배낭 옆에 별도의 물통 주머니를 만든다거나 하는 행위 등은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IMF 한파 이후, 한국경제가 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식기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식기반 산업에서의 부가가치가 일반산업에서의 부가가치에 비해 크다는 의미이다.
스포츠 산업도 마찬가지다.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들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스포츠 상품 생산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은 더욱 재미있게 하는 것, 즉 경기력 향상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에서는 수비수가 골키퍼에게 발로 패스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축구를 더욱 공격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함이다. 공격적으로 진행시킨다는 것은 보다 재미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농구장에서는 종래 공격제한 시간이 30초였으나 이제는 24초로 단축되었다. 보다 빠른 움직임을 유도해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경기라는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용품의 질이나 경기장 시설이 변한 경우도 있다. 테니스의 경우를 보자. 요즈음의 테니스 선수들은 모두가 탑스핀을 구사한다. 선수뿐만 아니다. 동호인들도 모두 탑스핀으로 감아친다. 과거 나무(우드) 라켓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테니스 라켓의 소재는 부단히 변해 왔다. 보다가볍고, 보다 강한 파워를 내고, 보다 많은 회전이 가능한 것으로 1954년 스위스 월드컵축구대회 때 독일은 바닥에 징(뽕)이 박힌 신발을 신고 출전하여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 후 축구화는 징이 박힌 것으로 일반화되었으며, 징의 모양, 징의 배열 등은 순발력을 배가시키고 안정성을 높이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축구공도 갈수록 가벼워지고 반발력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밖에 사이클 경기나 장대높이뛰기의 경우는 경기 용품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경기(상품)로 인식되고 있다.
전용 축구장의 건설이 강조되는 것도, 골문 뒤의 네트가 조그마한 충격에도 크게 흔들리는 것도 다 팬들이 보다 큰 재미를 느끼게 하여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즉 팬들이 종전에 비해 보다 짜릿한 쾌감을 느끼면(부가가치 증대) 관중수입이 늘고 이는 다시 중계수입 및 기타 부대수입의 증대를 가져와 이윤극대화를 도모하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하석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하석주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축구대회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터뜨린 주인공이다. 그러나 곧바로 멕시코 선수에게 백태클을 시도하다가 퇴장당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 대표팀은 멕시코 팀에게 역전패 당했다. 당시 축구팬들은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하석주는 왜 퇴장당했던 것일까?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하석주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 대표선수와 멕시코 대표선수들은 모두 각자 일(분업)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비해 하석주는 반칙을 통해 다른 근로자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둘째, FIFA는 98년 대회 직전 백태클에 대해서는 경고없이 바로 퇴장시킨다고 발표했다. 이는 축구를 더욱 재미있게(부가가치가 높아지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석주는 FIFA의 부가가치 제고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을 했다. 하석주가 이처럼 근무에 태만을 보였으니 어떻게 퇴장당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다시 정리해 보자. 열심히 근무해서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스포츠마케팅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상품의 질이 우수하지 않으면 마케팅부서 사람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뛰어난 광고, 홍보 전략을 구사한다 하더라도 이는 말짱 도루묵이 될 수밖에 없다. 우수상품 생산(경기)은 스포츠마케팅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라는 이야기이다.
참조 : 철철듀오 김병철, 전희철, 갈라진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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